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2012)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2012)

 

그럼 동물원에서
자라셨어요?

 

태어나고 자랐죠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도 폰디체리에서

 

아버지 소유의
동물원에

 

벵골 왕도마뱀을
살펴보러 와있던

 

파충류 학자가
내가 태어나는 걸 도와줬죠

 

어머니와 난 건강했지만
도마뱀은 도망치다

 

거대한 타조한테
밟혀죽었어요

 

그게 카르마죠

 

신의 뜻이요

 

재밌는 얘기네요

 

이름 때문에 아버님이
수학자인 줄 알았어요

 

수영장 이름을 따서
지은 거예요

 

'파이' 란
수영장이 있어요?

 

프랜시스 삼촌은 태어났을 때
폐에 물이 차서

 

의사가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어 흔들었대요

 

그래서 가슴은 크고
다리는 가는데

 

체형 때문인지
수영을 잘했죠

 

그분은 삼촌이 아니라
아버님 친구라던데요?

 

삼촌이나 다름없었죠
난 마마지라고 불러요

 

아버지의 오랜 벗이자
내 수영 선생님이었죠

 

매주 사흘씩 그분한테
수영을 배웠는데

 

그의 레슨이 훗날
내 목숨을 구했죠

 

널 해치는 건 물이 아냐
공포심이지

 

지금은 숨쉬어도 돼
참지 마

 

옳지

 

난 채식주의자라서
괜찮죠?

 

네, 그럼요

 

이름은요?

 

이름 얻은 경위를
말해주고 계셨잖아요

 

마마지가 아버지한테
말해준 거에서 따왔죠

 

사람들은 여행을 가면
엽서나 찻잔을 모으지만

 

마마지는 달라요

 

수영장을 수집하죠

 

수영장을 보면
꼭 헤엄치거든요

 

"피신 몰리토 수영장"

 

마마지는 아버지한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수영장이
파리에 있다고 했죠

 

물이 너무 깨끗해서
커피 끓여도 될 정도였고

 

거기서의 경험이
자기 삶을 바꿔놨대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랬대요

 

'아들이 깨끗한 영혼을
갖길 바라면'

 

'피신 몰리토 수영장에
꼭 데려가게'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내 이름을
'피신 몰리토 파텔' 로 지었죠

 

별난 이름 때문에
애도 많이 먹었어요

 

11살쯤이었는데...

 

피신!

 

피싱이면 영어로
오줌 싼단 뜻이잖아?

 

이름이 오줌이래!

 

발음 때문에
파리의 근사한 수영장이

 

악취나는 인도의
변소로 둔갑했고

 

늘 놀림을 받았죠

 

운동장에선
오줌 싸면 안 돼!

 

선생님들도
그렇게 불렀어요

 

고의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가스를 방출하면
어떻게 되지?

 

피싱?

 

선생님도
피싱이래

 

다들 조용!
조용해!

 

이듬해 새학년 첫날엔
준비를 단단히 해갔죠

 

네!

 

피신 파텔

 

안녕!
난 피신 몰리토 파텔이야

 

줄여서 말하면...

 

파이야
그리스어 알파벳인데

 

수학에선 원의
둘레의 길이와

 

지름의 비율을
나타내는 값이야

 

무한대 숫자지만
보통 3자리로 줄여서

 

3.14로 표시해

 

파이!

 

대단하구나, 파이
앉아라

 

그때부터
파이로 불렸어요?

 

그렇진 않았어요

 

헛수고 마, 피싱!

 

그날 하루종일
되풀이했죠

 

프랑스어 시간에도...

 

지리 시간에도...

 

이게 파이의
소수점 이하 20자리야

 

마지막 수업인
수학 시간에도

 

뛰지 마, 뛰지 마

 

3, 7, 5, 8, 9

 

8, 5, 8, 9

 

정확해요
진짜 다 외웠네요

 

파이!
파이!

 

학교가 마칠 쯤에는
전설의 파이가 됐죠

 

뱃사람들 사이에서도
전설이라던데요?

 

바다에서 혼자...

 

난 항해법을
전혀 몰라요

 

혼자도 아니었고요
리처드 파커와 있었죠

 

리처드 파커?

 

마마지한테 다
듣진 못했어요

 

몬트리올 돌아가면
만나보라고만 했죠

 

폰디체리엔
왜 간 거예요?

 

소설 쓰러요

 

참, 선생 데뷔작은
잘 읽었어요

 

신작의 배경이
인도예요?

 

포르투갈인데요
인도가 생활비가 싸서...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불가능해요

 

버렸거든요

 

2년간 살려보려고
애썼지만

 

희망이 안 보이길래
사망선고를 내렸죠

 

유감이군요

 

낙담하고 폰디체리의
카페에 앉아있는데

 

옆자리의 노인이
말을 거시더군요

 

마마지답네요

 

제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인도 프랑스 지역에
캐나다 작가가 왔군'

 

'캐나다 프랑스 지역에
사는 인도인이 있는데'

 

'아주 멋진 스토리를
갖고 있어'

 

'운명이 틀림없어
찾아가서 만나봐'

 

리처드 파커 얘기는
오랫동안 안 했는데

 

마마지한테
어디까지 들었어요?

 

제가 신의 존재를 믿게 할
이야기라고요

 

맛있는 음식을
두고도 그러죠

 

들려주긴 하겠지만

 

믿고 안 믿고는
알아서 판단해요

 

알았어요

 

좋아요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폰디체리는 프랑스의
휴양도시와 비슷해요

 

해안가 근처 거리는
프랑스 남부 풍이고

 

마을 한복판에
수로가 있는데

 

그 너머는
전형적인 인도예요

 

서쪽으로는
이슬람 구역이 있고

 

1954년 프랑스가
폰디체리를 반환했을 때

 

주민들은 기념할 게
필요하다 생각했죠

 

뛰어난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운영하던 호텔을 접고

운영하던 호텔을 접고

 

식물원 자리에
동물원을 열었어요

 

어머니는 그 식물원의
직원이었는데

 

거기서 만나 결혼했고
1년 후에 형 라비가 태어났죠

 

그로부터 2년 뒤엔
내가 태어났고요

 

신났겠어요
자란 곳이...

 

아멘

 

이제 먹죠

 

힌두교도들도
아멘이라고 해요?

 

천주교 힌두교도는
해요

 

천주교 힌두?

 

수많은 신을 섬기고
죄책감 느끼며 살죠

 

원래는 힌두교죠?

 

신은 소개를 받아야
아는 건데

 

처음 소개받은 게
힌두교였죠

 

자그마치 3천 3백만의
신들이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거잖아요?

 

크리슈나 신을
가장 먼저 만났죠

 

양어머니는
아기 크리슈나를 혼냈어

 

'이 못된 녀석
흙을 먹으면 안 돼'

 

그치만 안 먹었잖아

 

크리슈나도
그렇게 말했어

 

'흙 안 먹었어요'

 

그랬더니 양어머니가
'뭐라고?'

 

'입 벌려봐'

 

그래서 크리슈나는
입을 벌렸어

 

양어머니가 뭘 봤게?

 

뭐?

 

크리슈나의 입속엔
우주가 들어있었어

 

어린 내게 신들은
슈퍼히어로였어요

 

원숭이 신인
하누만은

 

친구를 구하려고
산을 들어올렸고

 

코끼리 머리를 가진
가네샤는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세상만물의 근원인
비슈누는

 

우주의 바다를
떠다니며 잠자는데

 

우린 그저
그의 꿈의 산물이죠

 

화려하네

 

허황된 전설과
예쁜 불빛에 속지 마

 

명심하렴
종교는 깜깜한 어둠이야

 

새로운 인도를 꿈꾸던
아버지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고통에 신음하며
신을 찾았었지만

 

아버지를 살린 건
신이 아니라 서양의학이었죠

 

대학을 나온
어머니는

 

부모님이
개방적이라 생각했지만

 

하층 계급과
결혼한 죄로

 

버린 자식 신세가 됐고

 

종교가 과거와의
유일한 끈이었죠

 

예수님을 만난 건
12살 때 산에서였어요

 

차밭을 경작하는
친척집에 놀러갔는데

 

사흘쯤 지나자
형과 난 심심해졌죠

 

2루피 줄 테니까

 

저 성당에 들어가서
성수를 마셔

 

목마르겠구나

 

여기

 

이거 마시렴

 

신이 왜 저랬어요?

 

왜 자기 아들을
보내서

 

인간의 죄 때문에
고통받게 해요?

 

우릴 사랑하셔서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거야
우리 인간들은

 

전능하신 주님을
이해할 순 없어도

 

예수님과 그분의 고통을
이해할 순 있으니까

 

전혀 말도 안 되는
얘기였어요

 

인간의 죄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다뇨

 

무슨 사랑이 그래요?

 

근데 예수님이

 

내 머릿속에서
나가질 않았죠

 

하느님은 완벽하고
우린 아니라면

 

왜 세상을
창조하신 거죠?

 

우리 인간이
왜 필요해요?

 

주님의 사랑을
알기만 하면 돼

 

세상을 사랑하기에
아드님을 보내셨지

 

신부님의 말을
들을수록

 

예수님이 좋아졌어요

 

예수님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비슈누 님

 

힌두교를 통해 믿음을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배웠죠

 

하지만 신과의 인연은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신의 행하심은
참 신비로워요

 

또다른 신을
소개 받았는데

 

이번엔
알라라는 신이었죠

 

아랍어는 못했지만

 

기도 소리와 느낌이
날 신과 연결해줬어요

 

기도를 하면

 

바닥은
성지가 됐고

 

소속감이 들어
마음이 편했죠

 

양고기가
육질이 좋네

 

아주 맛있어

 

어서 먹어

 

종교 3개만 더 믿으면

 

평생 기념일만
챙기다 죽겠다

 

이슬람 성지순례 갈 거냐
스와미 예수님?

 

아님 로마에 가서
교황이 될 거야?

 

놀리지 마, 라비

 

네가 크리켓을
좋아하는 거랑 똑같아

 

라비 말이 맞아

 

동시에 3개 종교를
믿을 순 없어

 

왜요?

 

동시에 여러 개를
믿는 건

 

하나도 안 믿는 거랑
똑같거든

 

아직 어리잖아요
자기 길을 찾겠죠

 

가야할 길을 모르는데
어떻게 찾겠어?

 

세상의 모든 종교를
믿는 것보단

 

이성을 믿는 건
어때?

 

우주를 이해하는데

 

과학은
수백년이 걸렸지만

 

종교는
1만 년이나 걸렸어

 

그건 그렇죠

 

아빠 말이 맞아

 

과학은 세상을
가르쳐줄 순 있지만

 

여기 있는 건
못 가르쳐줘

 

그래

 

누군 고기를 먹고
누군 채소를 먹고

 

모두의 생각이
똑같을 순 없지

 

네가 뭘 믿든
상관은 없지만

 

맹목적인
믿음은 안 돼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란 거지

 

알았니?

 

좋아

 

세례를
받고 싶어요

 

기독교인이면서
이슬람교도라고요?

 

또 힌두교도죠

 

유대교도 믿고요?

 

대학에서 유대교의
신비주의를 가르치죠

 

종교는 방이 많은
집과 같아요

 

의심의 방은
없어요?

 

층마다 아주 많죠

 

의심은
좋은 거예요

 

믿음을
유지시켜 주죠

 

시험에 들기 전까지는
믿음의 힘을 모르니까

 

사육사도 없는데
들어가면 안 돼

 

걱정 마

 

먹이 주는 거
수천번도 더 봤어

 

새 호랑이를
만나고 싶어

 

파이!

 

안녕?
리처드 파커?

 

리처드 파커가
호랑이었어요?

 

서류가 잘못돼
얻은 이름이죠

 

새끼 때 냇물을 마시다
사냥꾼한테 잡혀서

 

'목마름' 이라고
불리다가

 

너무 커지자 사냥꾼이
동물원에 팔았는데

 

서류에 둘의 이름이
뒤바뀐 거예요

 

사냥꾼은 목마름
호랑이는 리처드 파커로

 

웃겼지만 계속
그렇게 불렀죠

 

가자

 

들키면 혼나

 

가까이서 보고싶어

 

넌 사육사
아니거든?

 

가자!

 

그래, 리처드 파커

 

이거 먹어

 

안 돼!

 

뭐하는 짓이야?

 

정신 나갔어?

 

누구 허락 받고
들어왔어?

 

아빠가 가르친 걸
전부 무시했구나!

 

그냥 인사하고
싶었어요

 

호랑이가
친구인줄 알아?

 

짐승이지
친구가 아냐!

 

동물한테도
영혼이 있어요

 

눈을 보면 알아요

 

사육사 찾아와

 

꼭 이러셔야 해요?
아직 애인데...

 

시키는 대로 해!

 

짐승은
사람하고 달라

 

그걸 잊는 순간
죽는 거지

 

저 호랑이는
네 친구가 아냐

 

놈의 눈에서
네가 보는 건

 

그 눈에 비춰지는
네 감정일 뿐이지

 

아무것도 아냐

 

어서 잘못했다고 해

 

왜 그랬어, 피신?

 

아빠가 여긴
들어오지 말랬잖아

 

잘못했어요
전 그냥...

 

어쩌려고요?

 

당신은 빠져있어

 

잘못했다잖아요

 

평생 남을 상처를
줄 거예요?

 

상처?
팔을 잃을 뻔했다고

 

아직 애잖아요

 

다 컸으니까
감싸지 마

 

다시는 못 잊게
교훈을 줘야해

 

시작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사태가
선포됐습니다'

 

'구자라트와
타밀나두 지역은'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을 것이며'

 

'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하고 구금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어요

 

세상에 흥미를
잃었다고 할까

 

쓸모없는 이론들, 프랑스어뿐인
학교는 따분했어요

 

내 별명인
파이의 숫자처럼

 

끝없는 공부가
너무 지겨웠죠

 

"알베르 카뮈
이방인"

 

삶의 의미를 되찾아줄
계기를 애타게 찾았죠

 

그러다
아난디를 만났어요

 

어머니의 권유로
음악을 배웠는데

 

하루는 독감에
걸린 선생님이

 

무용수업에 자기 대신
북을 쳐달라고 했어요

 

틀렸어!

 

집중 안 하면

 

신에 대한 사랑을
춤으로 표현 못해

 

발 밑의
땅을 느끼면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너희 영혼의 에너지를
춤을 통해서

 

세상에 발산해

 

아난디
앞에 나와서 리드해

 

왜 따라오니?

 

뭐?

 

날 따라왔잖아

 

이게 뭘 뜻해?

 

춤을 추면서
숲을 상징하는

 

동작을 한 다음에

 

그리고...
다음엔...

 

이랬잖아

 

뭔가 숨겨졌단
의미고

 

그러곤 이랬어

 

그 다음엔
이렇게 했고

 

맨마지막엔
이런 손동작을 했어

 

다른 애들은
안 했는데

 

사랑의 신이 숲에
숨어있단 뜻이야?

 

아니
연꽃을 표현한 거야

 

연꽃이 숲에
숨어있다고?

 

왜 연꽃이
숲에 숨어있는데?

 

쟤가
리처드 파커야

 

우리 동물원에서
제일 멋진 녀석이지

 

머리 돌리는
모습을 봐

 

잔뜩 멋을 부리잖아
무용수처럼...

 

아니
소리를 들은 거야

 

뭔가를 듣고
있는 거지

 

알았냐?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파이?

 

죄송해요
아버지가...

 

걱정된다고

 

우리 가족이...

 

동물들을 외국에 팔아야
돈을 더 받아

 

시의회가 지원을
끊을 텐데

 

그럼 더는 못 버텨

 

그러니 다른
방법이 없다

 

알았냐?

 

무슨 소리예요?

 

인도를 떠난다고

 

뭐라고요?

 

동물원을 팔 거야

 

땅은
시의 소유지만

 

우리 소유인
동물들을 팔면

 

새출발 할 돈은
충분히 될 거야

 

어디로 가게요?
우리 집은 여기예요

 

캐나다

 

위니펙에
일자리를 구했어

 

동물들은 북미로
보낼 건데

 

우리도 같은 배를
타고 갈 거야

 

그러니...

 

결정된 거다

 

콜럼버스처럼
항해하는 거지

 

그는 인도를 찾아
항해했잖아요

 

동물원을 정리하느라
정신 없었지만

 

아난디와

 

서로의 마음을 울릴
시간은 있었죠

 

언젠간 돌아오겠다고
굳게 약속했고...

 

재밌는 건

 

그날 일이
다 기억나는데

 

작별인사를 한
기억은 없어요

 

파이?
저녁 먹으러 가자

 

피신

 

너와 형의

 

앞날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어

 

들어가서
저녁 먹자

 

채소만 주세요

 

아들과 전 채식만 해요
다른...

 

아뇨!
고기소스는 됐어요

 

고기소스가
싫다고요?

 

전 채식주의자예요

 

채식주의자들 먹는
식사로 달라는 거요

 

이 소도
풀만 먹고 살았수

 

소시지가 된 이 돼지도
풀만 먹었고

 

재밌군요

 

하지만 아내는
고기 안 먹어요

 

소시지에 밥
고기소스나 드셔

 

싫으면
직접 요리하든가

 

내 아내한테
말조심해요

 

여기 밥 있다

 

줄창 카레만 쳐먹는

 

족속들 위해선
요리 안 해봤어

 

지금 뭐랬어?

 

놔!

 

요리나 하는
일꾼 주제에!

 

가서 원숭이들
밥이나 먹여!

 

안녕하세요

 

전 불교신자인데

 

고기소스를
밥에 뿌려먹죠

 

배에서 그 소스는
고기가 아녜요

 

그냥
양념 같은 거죠

 

먹어볼래요?

 

걱정 마

 

마닐라에 정박하면
식료품을 사자

 

왜 오렌지주스를
마취시켜요?

 

말썽도 안 피우는데

 

여행 스트레스를
줄여주려는 거야

 

뱃멀미도 막아주고

 

오랑우탄이 멀미한 걸
누가 치우고 싶겠냐

 

안 그래?

 

아버지가 동물들을 직접
돌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그때 깨달았죠

 

인도를 떠나는 게 나보다
더 힘드셨을 거라는 점을요

 

그래서...

 

내가 빼먹은 거
있어요?

 

소설 윤곽은
잡혔어요

 

프랑스 수영장
이름을 딴 인도 소년

 

일본 화물선을 타고
동물들과 캐나다로 갔고

 

그래요

 

그 소년이
태평양 한복판에서...

 

제가 신을 믿게
만들어주죠

 

그래요

 

그 얘기도
곧 해주죠

 

마닐라를 떠난 지
4일째

 

지구상에서 가장 깊다는
마리아나 해구 위였는데

 

침춤 호는
항해 여건은 최악이었지만

 

느리지만 당당하게
파도를 헤쳐나갔죠

 

형?

 

들었어?

 

자고 있잖아

 

폭풍이 몰아쳐
구경하러 가자

 

미쳤냐?

 

잘못하면
번개 맞아

 

아냐
뱃머리가 먼저 맞겠지

 

폭풍을 얕보지 마
파이

 

비야, 더 퍼부어라!

 

폭풍의 신이시여!

 

번개야!

 

엄마!

 

아버지!

 

형!
빨리 밖으로 나와!

 

도와줘요!

 

도와줘요!

 

구명보트에 타!

 

우리 가족을
구해줘요!

 

겁먹지 말고
여기 있어!

 

가족을 구해줘요!

 

구명조끼 입어

 

우리 가족 좀 구해줘요!

 

구해줘야 해요!

 

- 시간 없어
- 가족이 갇혔어요!

 

우리가 구할 테니
먼저 가!

 

동물들은 누가
풀어줬어요?

 

가야 해!

 

우리 아버지는
수영을 못해요!

 

가!

 

꽉 잡아!
놓치지 마!

 

내려!
구명보트 내려!

 

주방장!
뭐 하는 거야?

 

뛰어내려!

 

- 조심해!
- 배 내려!

 

여기야!
이쪽으로 와!

 

리처드 파커?
안 돼!

 

안 돼!
저리 가, 가라고!

 

엄마!

 

아버지!
형...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리?

 

마취가 덜 깼구나?

 

오렌지주스!
오렌지주스!

 

파이의 방주에
탄 걸 환영한다

 

새끼는 어딨어
오렌지주스?

 

걱정 마
우리 부모님과 있을 거야

 

곧 다시 만날 거야

 

여기요!

 

여기요!

 

아무도 없어요?

 

안 돼!

 

그러지 마!
안 돼, 그러지 말라고!

 

미안해, 오렌지주스

 

너한테 줄
멀미약이 없어

 

비상식량이
있는지 보자

 

"서바이벌 가이드"

 

"바닷물은
절대 마시지 말 것!"

 

그렇지!
잘했어!

 

안 돼, 안 돼, 안 돼!

 

일로 와!
덤벼, 덤비란 말야!

 

'내 이름은 파이 파텔'

 

'항해하던 배가
침몰해서'

 

'구명보트를
타고있는데'

 

'호랑이랑 있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신이시여, 절 받아주세요

 

전 당신의
종이니까요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요

 

보여주세요

 

"세계 해류 지도"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

 

'비상물품을 정리하고
생존투쟁을 준비해라'

 

'식사와 휴식은
시간을 정해놓고 지켜라'

 

'오줌이나 바닷물을
마시는 건 금물이다'

 

'계속 움직이되
체력고갈은 피해라'

 

'카드 게임이나
스무고개 놀이를 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도록 해라'

 

'함께 노래를 부르면
사기가 올라간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
희망을 잃어선 안 된다'

 

'뱃멀미가 심해지면
생존의지도 꺾인다'

 

'바람을 거슬러
뱃머리를 고정시켜서'

 

'구명보트의 흔들림을
최소화해라'

 

'그럼 파도가 거칠어도
뱃멀미가 덜하다'

 

'나처럼 육식동물과
한배를 타고있다면'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게 중요한데'

 

'이런 방법을
써보도록'

 

'1단계'

 

'파도가 잔잔하고 일정한
날을 골라라'

 

'2단계
배를 파도에 태워'

 

'안정감을 유지한 후
호각을 살짝 불어라'

 

'3단계, 배가 흔들리게
방향을 틀고'

 

'호각을 호전적으로
세게 불어라'

 

'이를 반복하면'

 

'동물은
호각 소리를'

 

'뱃멀미의 고통과
동일시하는데'

 

'서커스 조련사들이
즐겨쓰는 방법이다'

 

'거친 파도가 없는
맨땅에서지만...'

 

나팔을 불어라!

 

북을 두들겨라!

 

놀랄 준비를 하시라!

 

여러분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평생 동안 기다려온
지상 최대의 빅쇼가

 

곧 시작합니다!

 

기적을 목격할
준비됐습니까?

 

그럼 소개합니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벵골 호랑이!

 

안녕, 리처드 파커
배를 흔들어서 미안해

 

내 구역이야!
거긴 네 구역, 여긴 내 구역!

 

알았어?

 

'4단계
1~3단계를 무시해라'

 

나와, 리처드 파커
물 마셔

 

'동물원에선 매일 5kg의
고기를 먹었으니'

 

'리처드 파커가
곧 굶주릴 거다'

 

'호랑이는 수영을 잘하는데
허기가 심해지면'

 

'우릴 갈라놓은 바다도
날 지켜주지 못할 거다'

 

'녀석을 먹일
방법이 필요하다'

 

'난 비스킷이면 되지만
호랑이는 육식을 하니'

 

'고기를 잡아
먹여야 한다'

 

'안 그럼 홀쭉한 채식주의자가
녀석의 마지막 식사가 될 거다'

 

기다려!

 

내가 뭐 하는 거지?

 

기다려!
생각 중이야

 

비스킷 깡통
32개

 

식수 깡통
93개

 

미안해

 

미안해

 

감사합니다
비슈누 신이시여!

 

물고기의 모습으로 나타나
우릴 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몰라서 비스킷과
물을 뗏목에 옮겼는데'

 

'바보짓 한 거다'

 

'오랜 굶주림은 사람을
완전히 변하게 만든다'

 

자, 먹어!

 

내 거야!

 

'매번 배에 탈 때마다
목숨을 걸 순 없으니'

 

'해결책이 필요하다'

 

'같이 살려면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지'

 

'길들이기는 힘들지만
훈련시킬 순 있을 거다'

 

안 돼!

 

좋아

 

가, 리처드 파커
어서 가

 

집에 들어가
귀찮게 않을게

 

진짜야, 약속해

 

들어가, 어서

 

좋았어!

 

'한뼘 그늘의 소중함을
이전까진 몰랐다'

 

'연장, 양동이
칼, 연필 따위가'

 

'귀한 보물이
되리란 것을'

 

'리처드 파커가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는 것도...'

 

'녀석도 나처럼'

 

'험한 세상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둘다 같은 주인 밑에서
편히 살아왔고'

 

'이젠 진짜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다'

 

'리처드 파커가 없었으면
난 지금쯤 죽었을 거다'

 

'난, 녀석을 보며
긴장했고'

 

'녀석을 돌보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었다'

 

돌고래야

 

리처드 파커!

 

'무엇보다
희망을 잃어선 안 된다'

 

8, 5, 5, 0, 3, 6, 6

 

0, 8, 0, 1

 

3, 6, 0, 4, 6, 6. 8

 

뭘 보고 있는 거니?

 

말해봐

 

뭐가 보이는지
말해줘

 

"침춤 호"

 

'내가 기댈 거라곤
이제 이성뿐이다'

 

'모든 게 뒤죽박죽됐고
산산조각 났다'

 

'몽상과 꿈이
현실과 구분이 안 된다'

 

폭풍이 와
리처드 파커

 

안 돼!

 

안 돼!

 

하느님을 경배하라!

 

온세상의 신이시여!

 

온정과 자비의
신이시여!

 

나와

 

리처드 파커!
빨리 나와서 이걸 봐!

 

너무 아름다워!

 

숨지 마!
신이 우리한테 오셨어!

 

이건 기적이야!

 

나와서 신을 만나봐
리처드 파커!

 

왜 겁을
주시는 거죠?

 

맙소사!

 

전 가족을 잃었어요!
전부 다 잃었다고요!

 

굴복했잖아요!
더이상 뭘 바라세요?

 

미안해
리처드 파커

 

우린 죽을 거야
리처드 파커

 

미안해

 

엄마, 아버지, 형...

 

곧 만나게 돼서
기뻐요

 

내 눈물이
느껴지니?

 

신이시여, 절 창조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젠 돌아갈
준비가 됐어요

 

리처드 파커?

 

잠깐만

 

비켜봐

 

비켜봐, 잠깐만

 

저리 가

 

저리 가
이건 내 침대야

 

사람의
이빨이었다고요?

 

식충섬이었던 거죠

 

식충?
육식을 한다고요?

 

네, 섬 전체가...

 

식물, 연못의 물은 물론
땅조차도요

 

연못 물이
낮엔 민물이지만

 

밤엔 화학작용으로 인해
산성화되어

 

물고기들을
녹여버렸고

 

미어캣들은 나무로
리처드 파커는 배로 도망친 거죠

 

그럼 그 이빨은
누구 거죠?

 

나보다 앞서
누군가 나처럼

 

바다를 표류하다
그곳에 도착했고

 

나처럼 영원히 거기서
살 수 있다 생각했겠죠

 

낮엔 희망을, 밤엔 절망을
주는 섬에서

 

그가 미어캣들을
친구 삼아 지내면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상상이 돼요?

 

그러다 결국엔
섬한테 잡아 먹혔고

 

이빨만 남은 거죠

 

그 섬에 남으면
어떻게 될지 뻔했어요

 

외롭고 잊혀지고...

 

바다에서 죽더라도
떠나기로 결심했죠

 

다음날
배를 준비했어요

 

마실 물을 잔뜩 싣고

 

배가 터지도록
해초를 먹고

 

리처드 파커를 위해
미어캣도 좀 실었죠

 

녀석을 버리고
갈 순 없었어요

 

그럼 죽을 테니까...

 

녀석이 돌아오길
기다렸죠

 

올거란 걸 알았어요

 

리처드 파커!

 

아무도 모르는
떠다니는 섬이고

 

자연 책에도 안 나오는
나무들이지만

 

그 섬을 못 찾았으면
난 죽었을 거예요

 

그 이빨을 못 찾았어도
혼자 외로이 죽었겠죠

 

신이 날 버리셨다
생각했는데

 

지켜보셨던 거죠

 

내 고통에
무심하다 생각했는데

 

지켜보신 거예요

 

구조될 희망을 버렸을 때
휴식을 주시고

 

여행을 계속하란
계시를 내리셨죠

 

멕시코 해안에 도착해선
배를 놓기가 두려웠어요

 

남아있는 힘은
하나도 없었고

 

겨우 가슴 높이의
얕은 바다였지만

 

익사할까봐
두려웠었죠

 

겨우 해변에 올라가
쓰러졌는데

 

따뜻하고
부드러웠어요

 

내 얼굴을 신의 볼에
비비듯이...

 

어디선가 날 보면서
미소 짓고 계셨겠죠

 

난 너무 지쳐서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리처드 파커가
앞장서 갔어요

 

기지개를 켜곤
해변을 걸었죠

 

그러곤 밀림 입구에서
멈춰섰어요

 

날 뒤돌아보면서

 

귀를 뒤로 젖히고
으러렁대고

 

작별인사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가만히 밀림을
쳐다보고만 있더군요

 

나와 함께
표류하면서

 

날 살게 해준
리처드 파커는

 

그렇게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졌죠

 

몇시간 후
누군가 날 발견했고

 

그가 사람들을 데려와
날 옮겼어요

 

난 아이처럼
엉엉 울었죠

 

이젠 살았다는
기쁨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가버린
리처드 파커가 야속해서...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우리 아버지가
옳으셨어요

 

난, 리처드 파커에게
친구가 아니었죠

 

생사를 같이했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하지만 녀석의 눈에
비춰진 게

 

결코 내 모습만은
아니었어요

 

틀림없어요
느꼈거든요

 

입증은 못하지만...

 

난 많은 걸 잃었어요

 

가족, 동물원
인도, 아난디

 

삶이란 결국 그런 거죠
보내는 것...

 

하지만 가장
가슴 아픈 건

 

작별인사조차
못했다는 거죠

 

아버지한테 감사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분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리처드 파커한테도
이랬다면 좋았겠죠

 

'다 끝났어
우린 살아남았어'

 

'구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리처드 파커'

 

'널 영원히
잊지 않을 거야'

 

'신의 축복을 빌게'

 

뭐라고 해야할지...

 

믿기가 어렵죠?

 

무슨 의미일까

 

이해하기가
쉽질 않네요

 

이미 일어난 일에
무슨 의미가 필요해요?

 

정말 놀라운
이야기네요

 

난파선 생존자는
나 하나뿐이었고

 

일본 선박회사가
멕시코 병원으로

 

사람 둘을 보냈어요

 

그때 보고서가
아직 있는데...

 

보험 처리 문제로

 

침몰한 원인을
알아야 했던 거죠

 

그들도 내 얘길
안 믿었어요

 

"보험 보고서
1978년 2월 19일"

 

미어캣들이 사는
떠다니는 섬이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한 그대로예요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아

 

갑자기 왠 바나나?

 

오랑우탄이 바나나
덩어리를 타고 왔다지만

 

바나나는
물에 안 떠

 

확실해?

 

못 믿겠으면
실험해봐요

 

아무튼, 미어캣이나
바나나 얘길하러 온 게 아냐

 

다 말했잖아요
너무 피곤해요

 

일본 화물선이 침몰한
이유를 알아야 해

 

영원히
안 잊혀지겠죠

 

가족 모두를
잃었으니까...

 

물을 좀 줘

 

다그쳐서 미안하다

 

가족 일은
유감이지만

 

멀리서 여기까지
왔는데

 

배가 침몰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잖아

 

저도 모른다고요!

 

큰 소리에 깼는데

 

폭발 소리인진
확실치 않지만

 

금방 배가
침몰했어요

 

뭘 더 바라세요?

 

우릴 바보처럼
안 만들 스토리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회사도 수긍하고

 

우리도 믿을 만한
그런 거 말야

 

현실적으로
그럴듯한 스토리요?

 

그래

 

짐승이나 식충섬 따윈
나오지 않는?

 

그래
진실 말이다

 

그래서 어쩌셨어요?

 

다른 스토리를
들려줬죠

 

넷이 살아남았고...

 

구명보트를 탄
주방장과 선원이

 

제게 튜브를
던져줬어요

 

엄마는 바나나 덩어리를
타고 왔고요

 

주방장은 역겨운
사람이었어요

 

쥐를 잡아먹었죠

 

비상식량이 충분했는데
쥐를 보더니

 

죽여선 햇볕에 말려
뜯어먹더군요

 

마치 짐승 같았죠

 

하지만 똑똑했어요

 

뗏목 만들어 낚시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죠

 

그가 없었으면
며칠 못 버텼을 거예요

 

다른 한 명은 밥 가져왔던
불교신자 선원인데

 

말은 안 통했지만
고통받는 건 알았죠

 

구명보트 타다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려고 했지만
심하게 감염됐어요

 

주방장은 그냥 놔두면
죽을 거라면서

 

자기가 자를 테니까
저랑 엄마한테

 

그를 꽉 붙잡으랬죠

 

그래서...

 

전 계속
미안하다고 했는데

 

절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저는 그의 고통을 영원히
이해 못할 거예요

 

지금도 들리는걸요

 

밥에 고기소스 뿌려먹는
불교신자였는데...

 

하지만 결국엔

 

죽었죠

 

다음날 주방장이
황새치를 잡았는데

 

엄마가 왜 화내는지
이유를 몰랐어요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 봤죠

 

주방장이 이랬어요
'잔말 마!'

 

'식량 떨어지면 죽어
고마운줄 알아'

 

'뭐가 고마워?'
엄마가 말했죠

 

'가엾은 사람을 죽여서
낚시 미끼로 썼잖아!'

 

주방장은
화를 내며

 

엄마한테 다가갔고

 

엄마는 그의 뺨을
세게 때렸어요

 

전 너무 놀랐죠

 

그가 엄마를
죽일줄 알았어요

 

하지만
안 죽였고

 

계속 같은 미끼를
사용했죠

 

그 선원은...

 

쥐와 같은
운명이 된 거예요

 

주방장의
아이디어였죠

 

일주일 후에
그가...

 

제 잘못이었죠

 

거북이를 제대로
잡질 못했거든요

 

손에서 미끄러져
놓쳤는데

 

주방장이
제 머리를 때려서

 

이빨이 흔들리고
별까지 보였어요

 

또 때리려 하자

 

엄마가 주먹으로
그를 내리치면서

 

소릴 질렀어요
'넌 괴물이야!'

 

저한텐 뗏목으로
가랬죠

 

엄마가 안 올줄
알았다면...

 

엄마부터 뗏목에
태웠어야 했어요

 

매일 엄마를
생각해요

 

뗏목에 올라타 뒤돌아보니
칼이 보였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너무 무서워서
눈도 못돌렸죠

 

그가 피흘리는
엄마를 바다에 던지자

 

상어들이 몰려들어선
엄마를...

 

다 봤어요

 

다음날
그를 죽였어요

 

자기 잘못을 아는지
저항도 않더군요

 

자기도 인간이니까...

 

그가 선원에게 한 대로
칼로 똑같이 해줬어요

 

악마 같은
사람이었는데

 

저까지 악마로
만든 거예요

 

평생 못 씻을
죄를 지은 거죠

 

그렇게 혼자
구명보트를 타고

 

태평양을 표류했고

 

살아남았어요

 

더는 묻지 않더군요

 

얘기를 들은 표정이
좋진 않았지만

 

고맙다며 쾌유를
빌어주곤 떠났어요

 

그러니까...

 

얼룩말과 선원

 

둘다 다리가
부러졌고

 

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죽였으니

 

그럼, 하이에나가
주방장이군요?

 

선원은 얼룩말이고

 

어머니는
오랑우탄이고

 

선생님이...

 

그 호랑이군요

 

하나 물어볼까요?

 

 

두 가지 버전의
스토리를 들려줬는데

 

배가 침몰한 원인은
설명 안 되고

 

어떤 게 사실인지는
아무도 입증 못하죠

 

두 가지 스토리 모두에서
배가 침몰하고

 

가족이 죽고
난 고통 받아요

 

그렇죠

 

어떤 스토리가
맘에 들어요?

 

호랑이 스토리요

 

더 흥미롭거든요

 

고마워요

 

신의 존재도
믿음의 문제죠

 

마마지가
옳았네요

 

아주 멋진
스토리예요

 

정말 제가
책으로 내도 돼요?

 

그럼요

 

그래서 마마지가
보낸 거잖아요?

 

아내가 왔네요

 

저녁 먹고 갈래요?
요리솜씨가 일품이죠

 

사모님이 계신지
몰랐어요

 

고양이도 있고
자식도 둘이죠

 

선생님의 스토리는
해피엔딩이군요?

 

그건 당신한테
달렸죠

 

이젠 당신의
스토리니까

 

'파텔 씨의 스토리는
난파선 역사상 가장 멋진'

 

'용기와 인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분만큼 바다에서 오래
생존한 조난자는 없었으며'

 

'생존자들 중
누구도'

 

'벵골 호랑이와
지내진 않았다'

 

손님이 오셨어
인사해

 

- 안녕하세요
- 반가워요

 

얜 아디타고

 

라비예요

 

번역
박지훈